컨택트 | Arrival (2016)를 보고 떠오르는 상념


생각의 흐름을 적기 전에 영화 자체에 대한 간단 소개.

내가 본 SF 영화 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이후 가장 철학적인 SF다. 그리고 가장 있을 법한 이야기. 심지어 <인터스텔라>보다 더. 에이미 아담스 연기도 훌륭했지만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아이디어 그 자체다.

외계인과의 접촉을 다룬 영화 중 독보적으로 낯선 <컨택트>는 SF 액션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재미없는 영화이니 비추천이다. 하지만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나 <인터스텔라>의 머리 회전을 좋아했던 사람에게는 추천.

(아래 내용은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은 읽지 않으실 것을 강력 권합니다.)

생각의 갈래는 대충 두 가지 방향이다. 우선은 인과론과 미래에 대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구원의 의미에 대한 것.

1.
인과론은 원인이 결과를 만든다는 것이지 않는가. 그래서 인간의 세계관은 인과론에 근거해서 단선적인 사고를 한다고 하고 미래를 알 수 없는 것은 이 단선적 사고 체계의 당연한 귀결이다. 아니 일어나지 않은 일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이가라고 하겠지만 <컨택트>에는 이 당연하다고 생각한 상식의 틈새를 파고 든다.

우리는 정말 아무런 미래도 알 수 없는가? 만일 내가 땅바닥에 공을 굴린다고 할 때 공을 굴리기 전이라도 미래는 당연히 예측할 수 있다. 내가 굴린 방향으로 공은 굴러갈 것이다. 물론 100% 장담할 수는 없다. 내 옆의 누군가가 그 찰나 그 공을 차버리면 미래는 달라질 것이므로. 하지만 단 0.5초라도 미래는 확정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헵타포드는 이 예측되는 미래를 현재와 동시에 사고한다. 미려하게 그려진 그들의 원형 언어를 보면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헵타포드의 세계관을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단선적으로 사고하는 우리도 그들처럼 예측되는 미래를 무한대로 확대하면 현재 나의 행위가 초래하는 미래를 동시에 사고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헵타포드는 불확실한 미래를 확정적으로 예측하는 무당 같은 존재가 아니라 예측 가능한 확률로서의 미래를 현재와 함께 사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인과론에 위배되지 않는다. 우리는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미래를 모른다고 단정하지만 헵타포드처럼 사고한다면, 즉 현재의 행위가 초래할 미래를 함께 사고하면서 행동한다면 보다 현명해질 것임이 분명하다.

2.
다음 구원에 대한 이야기다.

루이스는 헵타포드의 언어를 배우면 배울수록 헵타포드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보는 능력을 점차 갖게 된다. 이는 인간의 사고 체계 및 능력이 구사하는 언어의 체계에 의해 결정된다는 언어학의 이론에 따른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루이스가 인류를 구원하게 되는 과정이 너무 유아적이라 인간이 그 정도로 쉬운 존재인가, 의사 결정 체계가 그리 손쉽게 뒤집히나 싶기는 하지만, 내가 계속 떠올리는 것은 루이스가 미래를 봄으로써만 현재를 구원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인과론의 위배라서 말이 안되는 얘기라 그저 영화니까 하고 넘겨보지만 자꾸 떠올려지는 점은 현재에 머물러서는 결코 인류를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헵타포드가 지구에 온 것은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미래를 보는 능력을 갖지 못한다면 인류는 존속할 수 없을테고 그로 말미암아 본인들 존재도 사멸하게 됨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확률적으로 생각해보면 헵타포드에게나 루이스에게나 미래가 사멸로 귀결될 확률이 더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헵타포드나 루이스나 미래를 구원으로 함께 봤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 오히려 반대로 미래를 본다면 둘 다 멸종하는 미래를 볼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그럼 "외계인이 도착(Arrival)한 현재의 상황"이 초래하는 미래는 어떤 모습이란 말인가.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헵타포드 중에서도 희망적인 미래를 본 소수의 헵타포드가 있을 수 있고 그로 인해 미래의 확률을 바꾸는 결정을 내렸을 수는 있겠다. 그렇게까지 생각하면 루이스가 본 미래는 인과론을 위배하지 않고 헵타포드가 지구에 도착했을 때 이미 바뀐 미래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중국 장군에게 전해줄 메시지를 획득하는 과정은 순환논리라 불가능한 얘기겠지.)


루이스는 앞으로 살아가는 내내 자기의 미래를 볼 수 있는 형벌 같은 능력을 갖고 그 고통과 기쁨을 모두 담담히 끌어안으면서 "구원"과 "현재에 미래를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것이다.

결국 우리의 미래를 구원(Arrival)하는 것은 현재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그 가능성은 둘째로 치고 그 함의는 Seize the day와 비교해 볼만한 개념이다. 구원을 위한 선택은 루이스처럼 현재의 우리를 한정지을 것이기 때문에다.

2017.02.02 CGV
Lbxd


Comments

Popular posts from this blog

놀라운 발견 – 드로스테 저편의 우리들 | Beyond the Infinite Two Minutes (2020)

미친 격투의 끝없는 연속 – 퓨리어스 | The Furious (2025)

난해하지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 퍼플 스왈로우 | Purple Swallow (2025)

왜 제목이 [가능한 사랑]일까? | Possible Love (2026)

핵소 고지 | Hacksaw Ridge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