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제목이 [가능한 사랑]일까? | Possible Love (2026)


내 기억에 "사랑"이란 단어가 중요하게 사용되는 때는 두 가족이 상우의 별장으로 여행갈 때, 상우와 예지가 탄 차 안에서 상우와 예지의 대화에서였던 것 같다. 상우가 예지에게 "당신이 그들을 사랑하는 듯한 메소드 연기가 감탄스럽다"라고 반은 농담, 반은 칭찬을 할 때 예지는 강력하게 부인은 못하지만 "나는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려고 해"라고 대답한다.

(감독 이창동이 빙의된) 예지가 동의도 받지 않고 도촬을 하고, 고통을 감내하며 지내는 호석의 인터뷰를 따내려는 것들 모두 지극히 다큐 감독으로서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로 인해 파생되는 행동들, (미옥과 친구 먹고, 별장에 초대해서 음식과 풍경을 제공하는) 호의에는 정말로 "일종의 사랑"이 깃들어 있지는 않을까.

하지만 (웃기게도 오로지 촬영을 위한 아이디어로 떠올랐지만) 노조를 만들려는 예지와 미옥의 시도는 공장 노동자들과 의기투합이 잘 되어 노조 창립 모임까지 찍게 되는데 이때 뒤를 스쳐 지나가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말 한 마디 건네지 않는 이들의 "한 마음"은 과연 "얼마 만큼의 사랑"일까?


한편 미옥은 스티브 잡스와 상우에게 선망을 가지고 있음을 은연 중에 내비친다. 그리고 조금씩 내비치는 미소들..
이 둘의 관계는 해변에서 급변하는데, 미옥의 갑작스러운 행동은 상우에게서 "탐미적인 사랑"을 도발해내려고 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저 상류층들이 혼자만 즐기는 해변을 자신도 체험해 보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둘 다 가능한 해석이다.)
해변에서 상우가 미옥의 행동에서 촉발된, 하지만 영화 내내 쌓아왔던 미묘한 감정을 행동으로 표출할 때, 이 그릇된 욕망을 표출하는 상우를 피하는 미옥의 얼굴에 얼핏 헛웃음이 내비치는 것은 왜였을가? 이 둘은 마치 잡기놀이를 하는 듯 하다가 점차 심각한 분위기로 급변하는데, 이 상황에서 미옥은 무엇을 주저했다가 무엇을 깨달은 것이었을까?

상우는 충분히 빠른 몸놀림으로 미옥을 제압하고 폭력을 행사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최상류층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런 부드러운 행위가 자기네들이 베풀 수 있는 하나의 "친절"이었을까?
상우는 별장으로 돌아왔을 때 미옥의 손목을 잡으면서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지 않아요?"라며 (황당하게도 상대방의 배우자가 그 자리에 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변에서의 일을 계속 연장시켜 보려고 한다. 이것은 최상류층이 가진 자유로운 "순수한 감정" 표현를 의미하는 것인가. 이런 것도 "사랑"의 가능한 한 형태일까?


별장에서 오래된 호루라기가 없어지는 일이 생겼다.
상식적으로 예지는 새로 방문한 미옥 가족을 의심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예지가 그 호루라기를 못 보았냐고 미옥에게 묻는 과정에서 혹시 미옥의 아들 철이가 가져가지 않았을까 질문하는 게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그러지 않고 미옥이 예지에게 화를 내고 예지가 사과하는 장면으로 이어져버린다. (보통의 경우 가진 자들이 짜증을 내고, 없는 자들이 난처해하며 오해를 피하려고 쩔쩔 매지 않나?) 여기서 예지가 보이는 미묘한 난처함과 공손함, 그리고 결국 예지가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들까지 이 모든 행위들이 "예지가 가진 사랑"의 어떤 형태일까.


그리고 '달'에 관해서.
살아오면서 겪었던 예지의 '달'과 미옥의 '달'은 참 다른 분위기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예지에게서 비현실적인 "사랑"을 받고 상우에게서 위험한 "접촉"을 겪는 미옥은 (내 추측이지만) 이전부터 이미 예지 부부가 순수하게 사랑하는 이들이 아님을 알고 있고 그 자신도 어떤 누구와도 순수하게 연결될 수 없음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다.
미옥이 왜곡된 선의를 가진 예지에게 '달' 사진을 찍어 보낼까 하는 하는 행동은 이 관념적 공통점을 바탕으로 넘을 수 없는 계급의 강을 넘어보려는 시도일 것이다. 이제 미옥이 예지에게 주저하면서 건네려고 하는 '달'은 서로에게 비슷한 의미로 이해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동상이몽으로).

이 모든 관계는 어딘가 비틀어져 있으며 어색하고 피상적이고 가식적이다. 하지만 이창동 감독이 보기에 이 흐릿한 선의, 친절, 공손함, 탐미, 욕망과 배제가 동반된 연대가 현재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종의 최대한의 가능한 사랑"인 것 같다.


+ 나는 솔직히 나의 이 주관적인 해석 대부분이 제목이 "가능한 사랑"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이 좀 아쉽다.
+ 좀 우습게도 나는 '사랑', 'Love'를 무언가 순수함의 결정체로 상정하고 글을 쓰고 있다. (이 단어가 가진 숙명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감독이 제목에 "사랑"을 넣은 건 좀 안이한 것 같다. 차라리 "가능한 연대"가 더 솔직하다.
+ 그런데 수많은 역사적 사실과 예술 작품들이 보여주는, 이런 식의 교류는 지배계급과 그 밑 마름의 관계로 귀결되는 게 뻔하지 않은가. 아쉽게도 이 영화에는 그에 대한 경고나 자유, 일탈에 대한 묘사가 없다.

2026.09.23 CGV
관람 당일 쓴 감상문: 이질적 이야기들의 불편한 동거 – 가능한 사랑 | Possible Love (2026)
Lbxd / 익무 / 무코 / 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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