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질적 이야기들의 불편한 동거 – 가능한 사랑 | Possible Love (2026)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다른 분들의 호평도 존중합니다.)
일단 영화는 큰 감동을 주거나 곱씹을 만한 통찰을 주거나 등골이 오싹한 자각을 주지는 않지만, 전반적으로 우리가 한국 사회에서 살면서 내심 느끼는 어떤 불편함 — 한 나라에 살고 있지만 전혀 섞일 수 없는 계급이 만나서 일으키는 싸늘한 분위기는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에 공감하여서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을 받았겠지요.
하지만 나는 이런 분위기 만으로는 2시간 44분의 긴 시간을 할애한 것이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가능한 사랑>은 크게 두 가지의 프레임으로 장면들을 구현해 놓았습니다.
극중극의 형태라고 할 수 있는 다큐 감독 예지(조여정 분)가 찍은 장면들이 가지처럼 나오고, 그리고 다큐를 찍어 나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주된 줄기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다큐멘터리를 찍는 사람이 피사체에 이렇게까지 개입하는 게 맞냐는 얘기부터 하자면, 이 주제는 엄청나게 오래된 떡밥 아닌가요? 이런 걸 불편하게 묘사한 장면들은 뭐 그러려니 할 정도입니다.
줄기는 우선 여러 해고 노동자와 호석(설경구 분)으로 대표되는 노동이 핍박받는 사회 심리적 문제를 다루는 부분이 있고, 또 어릴 적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호석을 만난 때부터 이어지는 미옥(전도연 분)의 인생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미옥과 상우(조인성 분) 사이의 미묘한 사건들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 영화가 세 가지 줄기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 곳에서 발생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해고 노동자들의 애환과 고통을 다룬 부분입니다. 이창동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노동이 사라지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끊어지는 시대"라고 말했지만, 나는 이 영화가 노동이 사라지는 사회적 문제에 대해 겉핥기만 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이 점은 예지가 찍고 있는 다큐가 결국에 노동의 문제가 아니라 미옥-호석 부부의 "인간극장"으로 나아가는 데서 드러납니다.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인지 중간에 집단 상담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 장면에서만 등장하고 마는) 해고 노동자들의 1인 클로즈업 독백 장면들은 그 대사들이 너무나 교과서적이고 마치 각각 역할을 분담한 듯 보여 마치 연극을 보는 듯했습니다. (극중극이지만 다큐란 말입니다. 전혀 사실적이지 않았어요.)
마지막 호석의 인터뷰도 (설경구가 열연했지만) 솔직히 넋두리 같았어요. 그리고 이 주제는 끝이에요. 고민의 실마리조차 남기지 않습니다.
두 번째로 미옥의 인생사에서 전도연의 열연이 정말 대단합니다. 사실 이 영화를 끌고 가는 것은 미옥의 인생사와 현재 미옥이 여러 상황을 헤쳐나가는 스토리였어요. 미옥의 인생사를 위해 회상 장면까지 동원한 마당에 영화가 전도연의 연기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근데 미옥은 상우 혹은 스티브 잡스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내비친 것으로는 사실 큰 갈등 구조를 만들어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건 뭐 스릴러도 드라마도 아닌, 그냥 전도연의 열연 전시장처럼 되어 버렸어요.
마지막으로, 영화는 아주 초반부터 미옥-상우의 관계를 복선으로 깔아둡니다. 관객들은 이 부분에 집중하면서 영화 내내 이게 큰 갈등 구조를 일으킬지도 모른다(제발 너무 식상한 그것만은 하지 말아 줘!)는 불안감에 휩싸입니다. 나는 이 부분은 아예 전부 없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해변에서의 행동도 영화가 억지로 넣은 충격 요법 이상 이하도 아니에요.
상우에겐 각본에서 신경을 제대로 안 쓴 것 같더라구요. 마지막에 미옥의 손목을 잡으면서 "그냥 넘어갈 수는 없죠" 취지의 얘길 하는데 제 정신이면 이 대사 못합니다. 끄트머리에 SP중공업이 팔렸다는 기사에 당연히 상우가 성사한 거래가 연상되는데, 상우는 미옥-호석 부부가 별장에 머무르는 동안 이를 숨기는 내색조차 하지 않았어요.
2026.09.23 CGV
Lbxd / 익무 / 무코
며칠 후 추가 감상문: 왜 제목이 <가능한 사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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