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요를 입은 사람]을 보고 떠오르는 단상 | Blanket Wearer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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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정미 씨는 과감한 도전을 시작했다.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지구에서 돈 없이 일정 기간 살아내기 프로젝트다.
나는 솔직히 영국의 그 많은 쓰레기가 온전히 먹을 수 있는 음식들로 넘쳐나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정확하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분리 수거제에 의해 많은 음식물들이 가축 사료로 재활용되어서 저런 생활은 불가능할 것 같다.
자, 이제 감독은 프로젝트를 이행하려(혹은 생존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써서 —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필요하면 노동을 제공하고, 또 유럽 각지에 있는 공동체 조직에 참가하면서 — 돈 없이 사는 삶을 살아낸다.
나는 여기서 돈 없이 살아내기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유럽의 풍부한 환경과 사람들의 베품의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만약 아프리카 굶주리는 나라에 있었거나 사회 규범이 엄격한 아시아 어느 나라였다면 이 두 가지 요인 모두 불가능했을 것이다.
2.
어쨌든, 그는 — 나도 도시에서 자라 살았기 때문에 공감하는데 — 이 유럽 사람들처럼 자연과 교감하는 공동체 사람들이나 일하지 않고 느리게 즐기는 히피들의 삶에 크게 녹아들지 못한다.
여기서 영화는 다음 단계로 진화(발전이란 뜻이 아니다)하는데, 돈 없이 살기 위해 참여하기 시작한 사람들과의 생활이 지속되면서 영성적인 고민의 심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단순히 구속받음 없이 자유롭게 살기 위해 시작한 여정이 나는 왜 계속 두려워하는가,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 나에게 집이란 어디인가, 나는 정말로 자연과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나아가게 된다.
3.
나는 어렴풋이 이 영화가 사회 시스템 비판, 생태주의로의 모색 등으로 나아가겠지 예상했는데, 감독은 그런 거창한 이상주의적 선언보다 더 내밀한 자신의 내면과 고민을 드러내 주어서 반가웠다.
누가 이런 분위기의 영화에서 "나는 자연과 교감할 수 없어"라고 솔직하게 말했던가 말이다. 또 한편으로 똥 싸러 가는 모습이나 다른 사람들은 무덤덤해져 있는 샤워에 대한 집착을 그대로 보여주는 날 것의 모습들이 마음에 들었다.
감독의 여정은 이란에 이르러서 더 이상 생태주의 공동체에 머무르지 않고 그 나라 사람들의 호혜에 크게 의존하게 된다.
4.
결국 얻은 것은 무엇인가?
그냥 단순히 쌩고생 모험담으로 봐도 충분히 재밌고 충분히 극적이다.
그럼에도 나는 감독이 이 여정을 통해 많이 변화했고 지켜본 우리도 많이 느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무기력하기 보다는 차라리 무모한 것이 낫다는 생각과 행동에서 시작되었다. 경험을 통해 그는 흐름에 맡기기로 했고 머무는 곳이 어디든 집이 된다고 선언한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삶에 찌든 우리에게 감독이 건네는 격려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 계획을 세우는 것은 "우연"이 내게 줄 수 있는 수많은 기회를 배제하는 것이다라는 말은 신선하긴 했다. 하지만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할 때도 있는 법.
+ 오토바이 사건 이후 감독이 마음을 추스리는 과정이 참 안타깝고 또 대단하다고 느꼈다. 과거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실재가 아니다. 현재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앞에 있다. (정말 어려운 주제다.)
2026.09.08 시사회 (티켓 나눔 받음)
Lbxd / 익무 / 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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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그 더러운 환경을 감내할 만큼 쿨한 (혹은 목적 지향적) 성격이어서 그런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도 생각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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