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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November, 2014

상징들의 부조화 - 철의 꿈 (A Dream of Iron, 2014)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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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화 시대의 장면들, 기계가 만들어가는 거대한 선박, 그 모든 것에 대한 장례의식. - 거대한 기계와 그 틈바구니에서 기계를 조종하는 인간들의 모습이 마치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대 로봇의 실사 장면 같기도 하다. 사실은 그것보다도 거대한 선박 조립 과정을 보면 구조물, "철"이라는 재질이 화면을 장악할 때엔 압도되는 느낌을 받는다. - 기계가 압도하는 모습의 이미지는 괜찮다. 미적 쾌감이 있다. 마치 미술 작품처럼. (감독이 원래 미술가라 하네.) - 유신시대에 설립된 현대조선소의 지금 현재의 거대한 모습이 지금까지 우리를 지배해온 담론이었다. 국가라는 거대한 체제를 극복할 수 없다는. 시네마톡에서 감독은 고래나 제례의식이 이제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산업시대에 대한 장례의식으로 보여지길 원했다는 얘길 한다. - 철을 매개로 한 3부작 시리즈의 두번째 작품이란다. 첫 작품명은 [청계천 메들리]. 다음 작품은 [군대놀이]. - 감독 왈, 이 영화에선 너무 많은 설명을 하였다고 하며 앞으로는 영화 화법적인 "설명"은 더이상 하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고 한다. 이 작품의 나레이션도 원래는 없었는데 추가된 거. (원래 영화에는 나레이션이 없었는데 2014년에 재작업을 해서 나레이션을 넣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원래 2013년이라 적힌 부분을 2014년으로 고쳤다.) - 근데 이해를 해줘야 할 부분이 [철의 꿈]은 원래 영화가 아니라 '인스톨레이션'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한다. 인스톨레이션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영화적 문법으로만 이해할 사안은 아닌 듯 하다. - 하지만 나로서는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감독의 의도를 십분 이해한다 하더라도, 고래 이미지와 철 이미지가 충돌을 일으키거나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효과 같은 게 느껴지지 않았다. 잘 섞이지 않은 두 이물질 같은 느낌. - 이미지 만으로는 미술 작품처럼 볼 만하다. 하지만 영화라면 아무래도 기승전결은 아니더라도 흘러...

분노가 아닌 무력함을 느끼게 해준 - 액트 오브 킬링 (The Act of Killing,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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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정말 구역질난다. 더 구역질나는 건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등장인물에 대해 친근감이 들고 이야기가 지루해진다는 느낌이 드는 나 자신이다. - 이 영화를 꼭 봐야만 하는지는 의문이다. 우리는 편안한 극장 안에서 위해(危害)를 직접 겪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간접 체험임을 이미 알고 보는데도 그 끔찍함은 견디기 힘들다. 인간 존재의 추악함을 직접 눈으로 봐야 깨달을 수 있을까? 학살자의 유유자적함이란 초강력 뽕을 맞아야 정신차릴 수 있는 건 아닐거다. - 우리는 이 영화를 보지 않더라도 인간 존재의 무력함과 세상의 구조적 추악함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 이 영화를 본다고 해서 바로 행동으로 나서는 것도 아니다. 그럼 미학적 쾌감을 주는 것도 아닌 이 고발 다큐멘터리를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해답은 영화가 제시하지 않는다. 그 해답은 이 영화를 선택한 우리에게 있다. - 이 영화를 선택함으로써 우리는 세상에 대해 일말의 관심을 갖고 있다는 자기 위안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세상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자기자신은 그래도 관심은 있었다라는 대응논리를 미리 짜기 위해 극장에 앉아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정성일 씨의 책에서 '일부' 영향받은 문구임을 고백한다.) - 세상의 추악함을 애써 외면하고 살아가고 있는 건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수많은 사람 뿐 아니라 우리도 그렇다. "우리 시대의 문제점은 악한 자들의 폭언과 폭행보다 착한자들의 무관심과 침묵이다."라고 말했다고 하는 마틴 루터 킹을 생각해 보라. - 영화는 그 견디기 힘든 사실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나에게는 무력한 존재다. 인간 종과 생(life)의 의미에 대해 회의가 들 수 밖에 없는 참담한 영화라고 말할 때 참담함은 세상 뿐만 아니라 이 영화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결국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라는 회의만 남는다. 그래도 희망을 가져야 한다면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2014.11.25. 1...

자전거 탄 소년 (Le gamin au vélo | The Kid with a Bike,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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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실과 사만다, 두 사람을 연결한 인연의 끈은 무엇이었을까? - 두 사람이 함께 자전거 탈 때 그 어떤 참담한 상황에서도 삶은 빛나는 것 같다. - 그러나 결국 이 비현실적인 동화를 통해 우린 현실의 참혹함을 반추한다. (이런 인연은 누구에게나 쉽게 오는 것이 아니다.) - 2014.11.23. 감상. EBS. - 원래 썼던 Google+ :  https://plus.google.com/106944354670147886422/posts/FVtFu1ZtsAM

신파 선전극에 의해 촉발되는 혁명 – 헝거게임: 모킹제이 | The Hunger Games: Mockingjay – Part 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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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즈를 계속 봐오지만 헝거게임은 왠지 나랑 맞지 않는 것 같다. - 한마디로 좀 기괴하다. 대놓고 기괴한 장르는 아닌데 슬프거나 북받치거나 쾌감이 느껴지거나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이 영화의 (캣니스를 포함한) 등장인물들은 모두 조정당하는 좀비거나 약에 중독된 분위기를 풍긴다. 약하게 말하면 감정이 없는 것 같다. - 캣니스의 절박한 심정에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다. 즉 캣니스가 누구 때문에 안타까워하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조차 기이한 느낌이 감정이입을 가로막는다. - (파트2에서 혁명이 어떻게 전개될 지 두고 봐야겠지만) 미디어(선전)와 인기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이 얼마나 기괴한가. 맙소사! 혁명이 세밀하게 계산된 선전과 신파극에 의해 촉발되다니. 차라리 대중의 광기가 맞물려 폭발하는 거라면 차라리 이해가 되겠다. - 이런 분위기는 원작에서부터 의도한 것이겠지. 미디어에 지배되는 세상을 풍자라도 하듯이. 우리가 그런 시대에 살고 있나 보다. 2014.11.20. 21:50 CGV 먼저 쓴 Google+ 글: https://plus.google.com/106944354670147886422/posts/9shtLGsamLm Lbxd 1편 감상문: 헝거게임: 판엠의 불꽃 (2012) 2편 한 줄 소감: 헝거게임: 캣칭 파이어 (2013) 4편 한 줄 소감: 헝거게임: 더 파이널 (2015)

2014 스페이스 오디세이 - 인터스텔라 (Interstellar,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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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박스 글은 [인터스텔라]에 대한 리뷰라기보다는 새벽 3시 영화 감상 후 떠오른 단상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 둔 것이다. - 와 - 말이 안나오네. - 이걸 극장에서 아이맥스로 봐서 행복하다. - 끝나자 박수가 쏟아져 나온 영화가 얼마만인가. 게다가 엔딩 올라올 때 엔딩 끝날 때 두 번이나. 새벽 세 시에. - 이건 뭐 리뷰를 쓸 엄두가 안난다. - 반드시 아이맥스로 두 번 이상 봐야 한다. - 검은 우주 장면은 짧았지만 장엄했다. - 물리학 이론은 간명했지만 이게 드라마가 되다니. - SF로 생각하는 죽음과 사는 의미. - 지구가 정말 소중한 이유. 가짜는 가짜일 뿐. 그럼 짝퉁은? - 인셉션 같이 애매하게 끝나지 않아서 아쉽기도 하고 좋기도 하다. 스필버그 영화를 현대에 되살린다고 하더니 정말이네. - 인셉션의 거울 이미지와 같다라고 했다던데 많이 달랐다. 미지의 세계를 개척한다는 의미라면 통하겠지만. 오늘 아침 떠오른 생각은 [인터스텔라]는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장대한 우주와 시간 앞에서 탐험을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2014년판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다]이다. (하지만 그 분위기는 적막하거나 느리진 않다) 또는 드라마와 사랑이 가미된 [그래비티]다. 하지만 [그래비티]는 사실감을 극대화한 반면에 [인터스텔라]는 실재하는 것에 대한 상상력의 극한을 보여준다. 장엄한 우주 앞에서는 실제로 입이 쩍 벌어진다. 뭐든 좋다. [인터스텔라]는 우주-시간이라는 초월적인 환경 앞에 선 인간의 보잘 것 없음과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여기서 우주와 시간 모두가 중요한데 어떻게 이 상상할 수 없는 벽을 뛰어넘어 갈 수 있는지 참으로 막막함에도 끝까지 나아간다. (그리고 그것이 상당히 사실적으로 폐부에 와닿는다.) 먼지같이 미약한 인간이 우주 속에서 살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건 브랜드(앤 헤서웨이)의 말처럼 사랑이라는 이해할 수 없지만 존재함을 확실히 알고 있는 불가사의한 힘에 의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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