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 라이브즈 | Past Lives (2023)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든가 '전생', '윤회' 개념이 익숙한 나로서는 이 영화에 대한 서구의 찬사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인연'의 깊은 혹은 신비로운 뜻에 대해서는 영화 중반에 노라가 설명한 것으로 충분하다. 문제는 영화의 서사 구조가 충분히 그것을 표현해 내었는가일 것이다. 나는 두 남녀가 맺어낸 관계의 경험이 너무 적다고 생각하고, 두 사람의 감정 표현이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느꼈다.
노라와 해성의 관계는 12살 언저리에 머물러 있다. 해성과 나영의 인연은 20여년 전 한국에서 맺은 관계을 기반으로 하며, 그 이후의 노라는 그때의 나영이 아니다. 현재의 두 사람의 관계는 표피적이며 어쩌면 이상적이거나 또는 퇴행적인 관계임에도 그것을 '인연'이라는 개념으로 포장한 것은 아닌가.
사실 노라와 아서의 관계가 더 현실적이며 내밀한 인연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 사건과 함께한 삶은 아서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의도적으로 이 '인연'은 생략한다.
예전 기구한 인연을 소재로 한 한국영화가 많았던 것만 생각해봐도, 이 영화는 나에겐 (인연의 개념을 소개한 것을 뺀다면) 인연을 단지 '사랑이야기의 또 다른 변주'로 보여준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차라리 해성이 여자친구와 '조건' 문제로 결혼하지 못하게 된 한국 사회의 '인연'까지 보여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또는 사랑 이외의 다른 형태(배려, 관심, 용서 등등)의 다양한 '인연'을 조금이나마 보여주었다면 어땠을까.
마지막으로 두 남녀의 한국어 대사 부분의 감정 교류가 너무 서투르고 두 사람의 끌림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더욱 안타까웠다. 사실 해성의 감정은 예쁘게 포장한 '집착'일 수도 있다. 결국 사건과 경험으로 '인연'을 설득해내지 못한 영화는 마지막에 '전생' 개념을 한번 더 끌어다 씀으로써 그저 '인연의 개념' 소개로만 남게 되었다.
2024.03.06 CG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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