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핀처,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 2011)


데이빗 핀처의 밀레니엄을 본 지 며칠 되었는데 정리를 못하고 있다가 강박처럼 기록은 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펜을 든다.
일단 역시 데이빗 핀처 스타일이다! 라고 간단 정리는 하고. 그 외에 몇 가지 생각나는 대로 써 볼 생각이다.

내용은 평범한 범죄 스릴러

논리적으로 몇 가지 이해되지 않는 점은, 왜 살인자들은 성경에 나와 있는 구절을 인용해서 살인을 저지르는가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이 부족했던 거 같다. 나찌즘과 카톨릭에 대한 얘기가 있기는 한데 잘 이해는 되지 않았고 더욱이 살인자들이 그렇게 살인을 해야 할 개연성이 없어 보였다. 다시 말해 그냥 평범한 변태살인자일 뿐으로만 보였다. 또 미카엘(다니엘 크레이그)의 딸과의 관계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딸이 사건 해결에 힌트를 주긴 하지만 그외의 장면에서 미카엘이 신앙을 갖는 것에 대한 반감을 갖는 이유라든가 하는 것은 분명하지 않았고 단순히 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드러나긴 하는데 그게 큰 줄거리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듯 느껴졌다. 또 실질적인 주인공은 리스베트(루니 마라)로 생각되고 리스베트에 대해서는 과거사라든가 중심 사건으로 진입하기 전 개인적인 사건도 보여주는데 리스베트를 먼저 등장시켰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캐릭터의 힘, 그리고 역시 데이빗 핀처

이 영화는 처음 등장하는 타이틀 시퀀스에서부터 (이미 많이 회자되고 있는) 마치 007 시리즈의 도입부 같은 감각적인 장면을 보여주면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런데 장면은 감각적인데 느낌은 마치 탐욕과 이기주의에 물든 세상의 모습을 비유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감각적인 흥분과 정서적인 거부감의 충돌이 일어나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영화는 본 스토리로 진입하면 내가 보기엔 평범한 범죄 스릴러를 오로지 캐릭터와 편집의 힘으로 2시간 40분 가량을 밀어붙인 듯 하였다. 미카엘과 리스베트라는 두 주인공을 연기한 다니엘 크레이그, 루니 마라가 없었다면 이 영화는 좀 평범해졌으리라 생각된다. 여기에 심장이 계속 두근거리게 만드는 배경음악과 음향효과 덕분에 짧지 않는 시간에 지루함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역시 데이빗 핀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같이 기술적인 면만 강조되는 영화들 속에서 이렇게 불안하면서도 감각적인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감독의 작품은 쉽게 만나기 힘들다는 생각.

리스베트

무엇보다 난 리스베트가 마치 새로운 유형의 액션히어로 내지는 스파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스베트는 그 자체로 불안함으로 이루어진 캐릭터이며, 머리가 뛰어난 것은 사족일 만큼 그 불안함, 살아 있는 내내 타인에 대해 경계를 늦출 수 없는 니트로글리세린 같은 존재다.
미카엘의 과거에 대해서는 별 얘기가 없는 반면 리스베트는 사건에 투입되기 전 개인사에서 강력한 생존본능을 보여줌으로써 마음을 사로잡는다.

특히 내 마음에 남는 장면은 성폭행을 당할 때의 장면과 미카엘을 위로하기 위해 스스로 벌이는 섹스신이다. 잔인한 폭력이 난무하는 성폭행 장면, 이에 대해 복수하는 장면에서의 끔찍함이 세상의 끔찍함, 황량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면, 마카엘과의 섹스신은 그럼에도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다가 가장 불안한 리스베트의 손 내밀기는 (누구도 거부해서는 안되는 한 줄기 희망이 가장 끔찍한 이에게서 솟아날 수 밖에 없는) 애잔한 희망을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리스베트가 자기 보호인에게 찾아가서 난생 처음 친구가 생겼다고 조심스럽게 말할 때의 모습이, 그 때의 리스베트의 미소가 난 가장 멋진 장면이었다고 생각된다. (역시 헐리우스식?)

덧. 이번에 같이 영화를 본 분들은 참 좋은 만남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마자막 엔딩 타이틀이 다 올라갈때 까지 6명 전부가 자리를 뜨지 않고 마지막까지 영화의 여운을 함께 느꼈다. 난생 나에겐 이런 분들 처음이다. 그리고 뒷 자리에서 영화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대화를 할 수 있었던 경험도 소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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