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닉과 에이미다 - 데이빗 핀처의 나를 찾아줘 (Gone Girl, 2014)


데이빗 핀처의 [세븐]을 보고 전율에 며칠 간 마음을 뺏겼던 기억이 난다. [세븐]의 마지막 장면은 아직도 생생한데 그 뒤 [조디악], [소셜 네트워크],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등을 보았지만 역시 내게 데이빗 핀처는 [세븐]과 [파이트 클럽]이 최고다!

엔하위키 미러를 보면 "자신의 성공적인 경력 내내 중심이 된 생각은 "모든 사람들은 은밀한 변태다"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출처가 없어서 사실인지 확인하기 어려우나 데이빗 핀처를 설명하는 데 적절한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모든 사람들에게는 자신만이 마주할 수 있는 '자신의 본 모습'이 따로 있을 것 같다. 적나라한 자신의 본 모습을 직시할 때 회피하고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하다. 거기엔 도덕도 양심도 사회적 가치도 이기적 욕망에 비해선 근근히 회색 이름으로만 남아있을테니까.

[나를 찾아줘]를 개봉 전에 미리 CGV 시네마톡으로 봤다. 시사회 이벤트 같은 게 아니라 예매를 해야 하지만 영화 상영 후 이동진 평론가가 나와서 해설을 하는 시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서 영화 감상이 집단적인 오락이라는 점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나를 찾아줘]의 도입부는 이렇다. 결혼한지 5년 되는 부부가 있다. 5번째 결혼기념일에 아내가 사라진다. 집 안에 남은 혈흔으로 인해 아내는 납치된 것 같고 남편이 범인으로 의심받는다. 한편 예전 결혼기념일처럼 이번에도 (기념 선물을 찾는) 아내가 낸 수수께끼가 여기저기 나타난다. 남편 입장에서는 억울함을 풀기 위해 이 수수께끼가 안내하는 곳으로 찾아다니다가 결국 자신의 무고함을 풀기 위해선..

스포일러가 될 만한 내용을 빼고 말하자면, [나를 찾아줘]는 잘 만든 스릴러 영화다. 마케팅 광고에 적힌 추적 스릴러라기 보다는 '심리 스릴러'라고 하고 싶다. 이 영화의 핵심 키워드는 따로 있고 그 키워드로 모든 사연을 설명할 수 있으나, 굳이 (몇몇 이야기가 설명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키워드 없이 해석도 가능하다. 그것은 모든 인간들은 가면을 쓰고 서로를 대하면서 관계를 맺고 있는다는 것이다.

[나를 찾아줘]는 더 나아가 서로 속고 속이는 남녀관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선 한국의 막장 드라마와 비슷한 점이 있다. 거기엔 오로지 이기적 욕구만이 남아있으며, 서로에 대한 공감은 이기적 욕구를 위해서만 작동한다.
그런데 [나를 찾아줘]에서 나를 가장 즐겁게 만든 부분은 남편 닉(벤 애플렉)의 행동 변화에 있다. 데이빗 핀처는 극 중 닉을 변화시킴으로써 우리 모두가 다 똑같아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만 같다. 사실 닉의 행동 변화가 대단한 심적 갈등을 거쳐 나온 것도 아니다.

간단히 결론을 말하자면, [나를 찾아줘]는 문자 그대로 "끔찍하게 살벌한 웃음"이 나는 블랙 코미디이다. 하지만 우리네 결혼생활 또는 인간관계에 대한 은유로 확대하면 살떨리는 공포가 된다. 우습지만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아져서 재밌는.

아래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감상 전에 읽지 마세요.




CGV 시네마톡에서 이동진 평론가는 프로파일러 한 분을 데리고 나왔다. 여러모로 아내 에이미(로자먼드 파이크)는 사이코패스 또는 소시오패스다. 그리고 이 키워드로 이 영화 거의 전부를 설명할 수 있다. 영화 맨 처음에 나온 독백 "이 여자의 머리 속을 깨뜨려 뇌에 뭐가 들었는지 알고 싶다"도 이런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퍼즐을 다 맞춘 뒤에는 이 영화를 우리 인간관계에 대한 은유로 읽고 싶어진다.

영화는 전반부 1시간 가량을 실종된 에이미를 찾거나 닉이 자신에게 쏟아지는 의심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으로 채운다. 프로파일러 분과 이동진 평론가가 말했듯이 이 영화는 그 뒤 다른 스토리로 이어져서 마치 2개의 영화를 본 듯한 느낌을 준다. 문제 풀기 장르로서 전형적인 느낌을 주는 1시간이 지난 뒤의 전개는 느린 속도감을 갖지만 더 충격적이고 더 웃기고 더 끔찍하다. (이런 여러 감정을 한꺼번에 경험하게 하다니 대단한 감독이다.)

나는 앞 부분 닉이 의심받는 이야기에서 에이미가 납치되거나 살해당하지 않고 스스로 사라졌을 거라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었다. 영화 제목이 "나를 찾아줘"가 아닌가! 그런 의미로 앞 1시간을 감상하는데 가장 방해가 된 건 영화 제목이 맞다. 그냥 원문대로 Gone Girl로 했어야 한다. (앞서 먼저 출간된 책 제목이 [나를 찾아줘]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라나.)
게다가 (결혼 기념) 수수께끼가 계속 나오는데 이게 아내가 사라지면서 남긴 실마리라고 생각할 여지는 충분했다. 아마도 Gone Girl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 하더라도 앞부분에서 관객들은 에이미가 스스로 사라졌으리라 짐작하였을 것 같다. 이 영화의 핵심은 추적이 아닌 것이니까. 문제는 에이미가 왜 사라졌느냐가 아니라 닉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인 것이다.

그렇게 내심 영화 마지막 즈음에 에이미가 나타나 모든 사연이 풀리겠지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에이미가 어떻게 행동해서 사라졌는지, 어떻게 지내는지가 나온다. 급기야 후반부에 들어서는 충격적인 방법으로 에이미의 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에이미의 살인은 충격적이기도 했고 우리와 에이미가 다른 종류의 인간이란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래서 관객에게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으로 보여진 에이미의 행동이 모두 연기였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막바지 한 순간에 에이미의 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전율을 느끼게 한다.

그 기분은 상당히 끔찍한 느낌이어서 어떤 사람은 이 영화에서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그만큼 영화 상영 내내 우리가 에이미의 가공된 마음 속에 빠져 있었다면 말이다. 로자먼드 파이크의 아름답지만 약간은 시크한 표정은 현대 사회에서 우리 모두가 짓고 있는 표정 아닌가? 그런데 후반부 들어서 에이미가 사실은 거의 싸이코패스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내 내면을 틀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 그런 기분이 더 적나라한 것은 닉이 저지르는 짓 때문이다. 닉이 아내를 찾기 위해 방송 인터뷰하는 장면, 그리고 닉이 서서히 에이미의 올가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장면들에서 나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에이미는 그런 부류의 인간이다 치더라도, 그리고 (에이미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거리에 버려지지 않기 위해서라곤 하지만) 에이미에게 점점 옭아매어지는 닉의 모습을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에서 결국 나나 너나 근본적으로는 다를 바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가 아닌 닉의 모습에서 난 우리 모두가 에이미와 다를 게 뭐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자유'가 아닌 '생존'을 위해 가면을 쓰고 사는 삶 말이다. (아, 물론 닉이 에이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저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지만 가면은 그대로 쓰고 있을테지.)

아래는 엔하위키 미러에 적힌 소시오패스에 대한 설명 중 일부.
사이코패스와의 차이라면, 자신에게 해 될 짓은 안하고 싶어하는 것은 똑같지만, 소시오패스는 보다 지배적이라는 것이다. 상황을, 혹은 사람을 자기 지배적인 상황에 올려놓고 마음대로 주무르는 것. 합법과 불법 사이의 줄타기를 수행하며 자신의 우월성을 증명하고, 이 상황을 완벽하게 조작하고 장악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2014.10.17 CG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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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impawards.com/2014/gone_girl.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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