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와 사랑은 어떻게 공존하는가 : 비포 미드나잇 (Before Midnight, 2013)


1995년 유럽 횡단 열차에서 우연히 만난 제시와 셀린느.
2004년 파리의 오래된 서점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 
이제 2013년 중년이 된 두 사람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됩니다.


[비포 선라이즈]에서의 운명과도 같은 사랑의 설레임을 간직하고 있던 저는 [비포 선셋]에서 9년만에 재회한 두 사람이 어떻게 과거를 회상하며 어떻게 기나긴 시간의 공백을 메워가는지를 지켜봤습니다. 사실 두번째 만남은 새로운 만남이 아니면서도 새로운 만남처럼 다가왔죠.


비포 선셋은 줄기차게 이어지는 두 사람만의 대화로 구성된 독특한 영화였습니다.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대화에 빠져들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각본의 힘, 그리고 출중한 연기를 다시 한번 보여준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의 힘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제게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비포 선라이즈에서 영원히 청춘의 설레는 사랑으로 각인되었던 두 사람의 얼굴에 새겨진 주름이었습니다. 저는 비포 선셋의 또 다른 매력은 우리 모두가 각자 지나온 9년을 돌이켜보고 그 세월의 흔적을 두 연인과 공유하는 경험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니까 가능한 것이었을까요? 어쨌든 기적처럼 두 사람은 다시 만나 흥겨운 잡담과 애틋한 눈빛을 교환했습니다.


그 뒤 또 9년이 지난 지금 두 사람이 다시 정말 오랜만에 둘 만의 대화를 시작합니다. 그렇습니다. [비포 미드나잇]은 비포 선셋과 기본 형식이 같습니다. 약간 다른 점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두 사람의 대화만이 이 영화를 이끌어 갑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참 살갑기도 하다가 역시나 서로 관점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기도 하다가, "다시 한번 만나도 나에게 말을 걸어올거냐"라고 묻기도 하는 등 물 흐르듯이 흘러갑니다. 그 흘러가는 대화를 통해 지나온 세월 속에서도 두 사람이 서로 의지하고 사랑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사실 우리 문화에서는 이들처럼 줄기차게 대화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다가 돌연 영화는 두 사람 앞에 현실을 불러옵니다. 격한 충돌 속에서 두 사람은 얼마나 서로가 다른지, 얼마나 서로 참고 살아왔는지, 서로의 고통을 위로해 주지 못하면서 살아왔는지를 드러냅니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은 제시가 쓴 소설 속의 서로 사랑하는 제시와 셀린느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부딪히는 우리 모두의 대표자로서의 제시와 셀린느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제 진실이 드러날 차례입니다. 제시와 셀린느는 언젠가부터 서로 사랑하지 않았음에도 참고 살아온 것일까요? 결론은 영화를 보고 느껴봐야만 알 수 있습니다. 결론은 관객 한 명 한 명마다 다를 수도 있습니다.

저로서는 이 영화를 보고 한 움큼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실제 부부가 본다면 많이 공감될 것 같고, 연애를 하고 있더라도 미혼은 공감되지 않을 공산이 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눈물을 훔친 다음 다시 한번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쨌거나 지금 이 시점에서  비포 미드나잇은 가장 아름답지는 않지만 가장 공감가는, 그럼으로써 가장 사랑스러운 사랑 영화임에는 틀림 없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비포 미드나잇은 영화 속에 박제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서로 상처주면서도 참고 살아가는 두 사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도,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사랑에 임해야 하는가를 우리 내면에서부터 느끼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세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 수 있음을 알려 준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의 두 배우 에단 호크, 줄리 델피와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에게 애정을 보냅니다.

관련 글 : 열망을 감추는 몸짓 속의 진실, [비포 선셋]

2013.05.23 CGV 명동역씨네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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