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크 쉘터 (Take Shelter, 2011) - 미쳐가는 한 남자와 결국은 그와 함께 한 여자의 로맨스
배경이 되는 시기가 명확하지 않은 어느 날부터 커티스는 악몽을 꿈니다. 아마 현재 시점의 미국이 되겠지요.
커티스의 악몽은 주위 사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에게는 조만간 닥쳐올 재앙에 대한 계시가 됩니다.
이 영화를 보는 관점으로 주로 많은 분들이 미국 경제의 몰락, 특히 미국 중산층 신화의 몰락으로부터 드러나는 불안을 지적합니다.
맞습니다. 커티스는 대표적인 노동자이지만 의외로 나름대로 깔끔한 정원과 갖춰진 집에서 삽니다만 그 모든 것이 대출로 이뤄진 것이라면?
이런 것으로 표상되는 "불안"이 커티스가 느끼는 자연재해 또는 산업재해에 대한 "불안"의 이미지로 이해됩니다. 따라서 영화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폭풍우, 새떼들, 노란 빗방울 등의 물리적인 이미지는 현재 어려움에 처한 미국인들의 강박증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하지만 저는 또다른 면을 보게 되었는데요.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자기 가족을 지켜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는 과정과 아내와 함께 하는 과정이 지니는 의미입니다.
커티스 본인 스스로가 자신이 미쳐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덮어가면서 실제로 인류가 멸망할 것이 스스로 자명해지는 과정은 이해되기 어렵습니다. 다만, 그것이 가족에 대한 걱정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면 이해할만 하지 않을까요? 운 좋게도 커티스는 사만다라는 이해심 많은 아내가 있습니다.
커티스가 온갖 사고를 치더라도 사만다는 어떻게든 이해하면서 이 가정을 꾸려나가려고 노력하는 현실적인 여인입니다.
이런 커플이라면 진짜로 인류가 멸망하는 순간이 온다 할 지라도 행복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 영화는 한 편으로는, 아니 전체적으로는 "불안의 증폭 과정"을 담은 영화라 할 수 있겠지만, 다른 일면으로는 "가정을 지켜야겠다는 순수한 의도가 있지만 미쳐가는 한 남자와, 현실적으로 가정을 지켜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여자와의 로맨스"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덧)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알랭 드 보통의 [사랑의 기초 : 한 남자]를 약간 읽었습니다. 아쉽게도 그 덕분에 [테이크 쉘터]를 통해 느꼈던 커티스의 순정과 책임감은 쉽게 희석되었습니다. [사랑의 기초 : 한 남자]는 사랑과 가정이란 것이 얼마나 약한 토대 서 위에 있는 지 말해 주니까요. ㅠㅠ (관련 글: 알랭 드 보통의 [사랑의 기초_한 남자]를 읽고)
2013.04.28 CGV 압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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