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렛 요한슨의 루시 (Lucy, 2014)


뤽 베송 감독의 [루시]는 액션 영화이기도 하면서 SF 장르로 넣어도 될 만하다.
홍보 마케팅에서 보여준 장면들에서 주입된 예상과 다른 화면 때문에 처음엔 다소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적절한 배합 덕분에 뤽 베송이 설파(?)하고 있는 SF적인 논리는 쉽게 무시할 수 있었다. 그 논리란 "생명 진화의 정점에 있다 할 수 있는 인간도 뇌 용량의 10%만 쓰고 있다. 그 결과가 현대의 인류 문명일진대 만약 100%를 사용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생각이 가지치기한 것이다.

이 10% 사용 논리가 하도 영화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어서 과학계의 진실을 알아보면 이는 사실이 아니며 인간 또는 모든 생명체는 뇌의 100%를 모두 쓰고 있다고 한다. 10% 사용 얘기는 과학계의 '도시 전설'이라고 한다. (허핑턴포스트 - 인간은 정말 뇌의 10%만 사용할까?)

(이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루시]에는 루시가 초능력을 갖게 되어 사람과 물질을 자유자재로 컨트롤하는 장면, 카체이싱 장면, 화려한 그래픽으로 시공간을 투사하고 결국 시원에 가닿는 장면 등등 흥미로운 부분도 있지만, 뤽 베송이 루시의 입을 통해 늘어놓는 세계관을 들어야 하는 하품 나는 장면도 있다.

그것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로 치환해도 될 법한) 세포의 존재 이유는 지식의 전달에 있다."라거나 "인류가 밝혀낸 모든 과학 법칙은 다 현상에 대한 설명에 불과하고 결국 다 진리가 아니다. 궁극의 진리는 '시간'이다." 같은 얘기가 나온다.

그런 논리가 영화 속에선 그럴싸 하고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 같은 느낌도 들었지만 결국 난 전혀 새로울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보면 [루시]가 [트랜센던스]와 비슷한 결론으로 나아가는 것도 새로움 없는 아이디어에 기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루시]와 [트랜센던스]의 결론은 근본적으로는 같은데 둘다 황당하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인공지능을 통해 절대 능력을 갖는다는 설정이 뇌 용량을 100% 다 쓸 수 있어 절대 능력에 다다르는 것보다는 보기 좋은 것 같다. 그건 [트랜센던스] 이후에 개봉한 운명 때문에 어쩔수 없었던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루시가 본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전혀 궁금하지도 않았고 루시가 어느 곳에나 있다고 할 때에도 전혀 떠오르는 상념이 없었다.


[루시]와 루시가 매력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모든 게 스칼렛 요한슨 때문이다. 내게 최적의 감상법은 관람 내내 스칼렛에서 시작해서 요한슨으로 끝나는 그의 모습과 행동을 지켜보는 것이다. 또한 [그녀]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가 맞는지 계속 음색을 음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살짝 키스할 때 키스받는 기분은 어떨까 상상해 보는 것이다. 일종의 관음적인 태도가 이 영화의 주된 감상 포인트라니 아쉽다.


최민식의 영향력은 스칼렛 요한슨 만큼은 아니지만 적어도 카리스마는 넘친다. 나는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들에서 최민식 만의 특유한 느낌을 받았다. 다만 설정과 각본의 한계 때문에 그렇게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그 한계 속에서도 나름의 독특한 악당의 모습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스칼렛 요한슨과 최민식이란 배우의 매력을 느끼려 극장을 찾는다면 [루시]는 꽤 만족스러운 선택이 될 수 있겠다.

가장 만족스러운 장면은 역시 루시가 뇌 용량을 채 5%도 안쓰는 상태 같은 표정으로 남친과 실갱이하는 모습이고, 최민식이 얼굴에 피를 뒤집어쓰고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다.

2014.09.03 CG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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