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리더는 이런 모습이다 - 명량 (The Admiral: Roaring Currents, 2014)


1. 어제 본 [명량]은 크게 몇 가지 굵직한 생각거리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첫째 "두려움을 이용하여 용기를 일으킨다."라는 이순신의 생각. 그리고 또 하나는 "명량에서의 승리는 천운이었다. 그 천운은 울돌목에서의 회오리였던 것이겠느냐? 아니면 백성들의 도움이었던 것이겠느냐?"라는 이순신의 물음이다.

이 부분에 대한 내 생각은 맨 뒤에 쓰기로 하고.. 일단은 명량전투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어 좋았고, 어차피 가설이지만 박제화된 먼 옛날의 영웅 이순신이 아니라 현대에 살아있는 인간같은 이순신의 인간적인 고뇌를 생각할 수 있어 좋았다.

2. 상업(액션)영화로서 [명량]은 전반적으로 어색한 CG에도 불구하고 굉장한 쾌감을 주는 영화다.

CG는 어색한 부분이 많았지만 그런 부분을 다 잊게 만드는 것은 역시 이순신이라는 역사적 인물로부터 우러나올 수 밖에 없는 감격이었다.

이순신이라는 캐릭터가 주는 근원적인 호소력 이외에 이 영화는 전반부 전투를 준비하는 과정과 후반부 전투 장면 모두에서 굉장히 세밀하게 매듭을 이어감으로써 우리에게 마치 정유재란에 함께 하는 듯한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3. 다시 말하지만 명량전투가 벌어지는 장면들이 대단하다. 다만 장면 장면으로 따져보면 미흡한 부분이 많고 액션의 아슬아슬하거나 멋진 장면들은 별로 없다.
대신에 명량에서의 전투 씬이 가지는 가장 큰 매력은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갔다 올라오는 듯한 감정의 기복을 준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즉 해상 전투의 긴박감과 이순신의 카리스마가 잘 어울어져 한 시간 가량을 끊임없이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내려갔다 하는 장중한 쾌감을 준다.

(아래부터는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습니다.)

4. 이순신의 카리스마에 대해서는 좀 생각할 게 있다.
이순신의 카리스마는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또 이 영화에서 예상하는 카리스마가 아니다.

싸움을 준비하는 전반부는 예상과는 달리 어떠한 감동적인 연설이나 장엄함은 나오지 않는다. 탈영병의 목을 베고 "군율은 지엄하다"라고 하는 장면에서조차 이순신의 카리스마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거북선이 불타는 등 가면 갈수록 사기가 떨어지고 나락의 연속이었다.

5. 그런데 이런 죽음에의 공포에 떠는 군사들을 이끌고 아무런 희망도 제시하지 않고 이순신은 전장에 나선다. 즉 이순신의 카리스마는 이순신 안에 잠들어 있다가 후반부 해상 전투에 닿아서야 나타난다.
죽음의 문턱까지 내몰린 군사들의 공포, 좌절감을 윽박지름이나 군율 같은 강압적인 방법이 아니라 예상 외의 것을 군사들에게 줌으로써 나오는 카리스마다.

6. 그것은 희망이었다. 전투를 준비하면서 오히려 군사들을 벼랑 끝까지 밀어붙이면서 "너희 목숨은 죽은 것"이라고 말했던 이유를 알겠다.

이미 죽을 것을 아는 군사들에 무슨 미련이 있겠는가. 그런 마음으로 전투에 임한 군사들을 이끌고 울돌목에서 이순신이 보여준 것은 바로 희망이었다. 과연 이것보다 더 큰 용기를 주는 리더가 있을까?

7. 바닥을 쳐야 올라갈 힘이 생긴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바닥까지 내려가도 못 올라오는 경우와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경우는 무슨 차이일까? 이순신의 보여준 것은 바로 바닥에서 치고 올라올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 어떻게 생겨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8. 우리가 문헌을 통해 알고 있는 "살고자 하는 자는 필히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는 자는 필히 살 것"이라는 선언을 직접 전투로 보니 감정이 울지 않을 수 없었고, 이렇게 치밀하게 "죽음에서 되살아나는 용기"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니 마음이 울리지 않을 수 없었다.

9. 하지만 사실 명작이라고 할 수 없는 몇몇이 있다.

아까 어색한 CG 외에도, 이순신 외에는 존재감이 많이 적었던 수많은 조연들이 아쉬웠다(물론 최민식은 마치 이순신이 환생한 것 같이 정말 최고였다).
말 그대로 이순신 외에는 조선에 제대로 역할을 하는 장수다운 장수가 없어 보였다.

10. 왜군 장수들은 더한데, 그들의 생각과 전술 수준이 너무 낮아 (나중 얘기지만) 대결 자체가 안되는 일방적인 싸움으로만 그려진 것이 아쉬었다. 어차피 픽션이 많으므로 왜군들도 좀더 치밀했었더라면 이순신의 위대함이 더 도드라졌을 것 같다.

11. "두려움을 이용하여 용기를 일으킨다"는 부분이 이 영화의 핵심인데 각본이 좀더 치밀했더라면 했다. 위에 내가 쓴 "두려움의 극한까지 내려가야 희망이 생긴다"는 것은 내가 "해석"한 것이고 영화를 감상할 때에는 그런 부분이 잘 와닿지 않았다.

즉 아무리 그래도 돌연 군사들의 두려움이 용기로 변하는 과정이 좀 어색했다는 얘기다. (사실 영화에서는 두려움을 "이용해서" 용기를 일으킨다고 해서 내가 해석한 부분과는 좀 다른 뜻이다.)

마찬가지로 "백성들의 도움이 천운"이라는 핵심 주제와도 통하는 백성들이 나서는 장면들 역시 개연성이 좀 떨어지는 부분이 있었다.

12. [명량]은 상업 영화로서의 재미와 쾌감도 충분할 뿐더러, 최근 정치판 아니 한국 현대사를 생각하면서 우리나라엔 왜 제대로 된 리더가 없을까라는 의문에 대한 하나의 답변을 제시해 준다고 생각된다.

"죽음에의 공포를 용기로 바꾸는" 제대로 된 리더는 삶에 대한 치열함에서 나온다. 또한 제대로 된 리더는 이순신 한 사람만이 아니라 수 많은 조연들과 백성들이 한꺼번에 맞물릴 때 천운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13. 또한 이 영화에서 우리가 생각할 것이 있다면 바로 "어차피 개판인 이 망할 나라에서 못 볼 꼴 다 본 삶이라면 오히려 후세를 위해 처절하게 한 판 해보고 망해보자"는 것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2014.07.30. 20:20 CGV
(이 글의 제 생각은 오마이뉴스 리뷰 "이순신, 그는 영웅이 아닌 처절한 인간이었다"에서 일부 영향을 받았습니다.)
Google+ 관련 포스트: http://goo.gl/pDp9l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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