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개론 (2012)

태그라인이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인 건축학개론은 오랜만에 감성을 자극하는, 그것도 감정의 과잉이나 폭발이 아닌 누군가에게나 있는 숨겨진 감성을 건드림으로 새삼 마음을 떨리게 하는 작품이었다.


기억들
대부분의 사람은 첫사랑을 떠올리는 물건이나 어느 순간의 기억을 갖고 있다. 일상에 쫒겨 살다보면 잊고 살지만, 이사를 하려고 묵은 소장품들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옛적에 그렇게 소중하게 간직하던 작은 쪽지 하나, 바랜 사진 한 장을 발견하면 아주 짧은 순간-또는 잠시 손을 놓은 채- 그 때 그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여기서는 그것이 승민과 서연이 처음 만난 곳은 건축학개론이라는 강의에서였다. 우리도 현재의 승민-또는 서연-처럼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고 가슴 속에 몰래 담아둔 자신만의 소중한 것이 있다.

영화에서는 그 밖에 많은 소품들과 사건들에서 소중한 무언가를 끄집어 내는데 영화는 관객들에게서 그 부분의 공감을 잘 이끌어낸다. 10년 전후한 과거를 회상하면서 많은 관객들이 웃거나 미소 짓고, 또 두 사람이 소소한 만남을 가지면서 던지는 표정, 말 한마디가 다 자기가 겪었던 것처럼 공통분모를 잘 찾아낸 것이다.

차츰 나도 그 때 그 기억 속에 함께 있게 된다.

첫사랑
나는 건축학개론을 보면서 클래식을 떠올렸다.
클래식의 조승우, 손예진의 사랑의 방해물은 집안의 반대 같은, 그동안 다른 곳에서 많이 봐왔던 “순애보” 스타일이었다면, 건축학개론은 주로 내면의 동요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고백할 용기보다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먼저 생각하고, 내가 고백하면 과연 받아줄까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

사랑이란 과연 무엇일까? 어른스럽게 말하듯이 ‘진정한’ 사랑이란 서로 독립된 개체로서 상대의 성장을 기원하고 도와주는 관계일 것이고, 또는 ‘열정적’인 사랑은 자기 자신은 중요하지 않고 모든 것을 사랑에게 바치는 것일테다.

그럼 이런 것도 사랑일까? 이제 막 가슴이 두근두근거리고 항상 생각나는데 어찌해야 할 지는 모르겠다는 그 느낌은 사랑일까.
처음 “이게 사랑일까”라는 감정을 느끼는 청춘에게는 그것은 설레임이자 동시에 두려움일 것이고, 충분히 자기 자신을 다 내어보이지 못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건축학개론은 아주 서툴고 소심하여 안타깝기도 하지만 또 서툴고 소심하기 때문에 그 모습들이 예쁘다. 나도 저런 감정일 때가 있었지, 그 때는 그 얇은 유리 같은 감정을 엄청나게 중요한 다시 오지 않을 사랑이라고 생각했지 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모두 그 과정을 거쳐 어른이 되었지만, 이제 다시는 그 감정을 직접 느낄 수는 없다. 그래서 첫사랑은 언제나 아름답게 추억된다.

‘다시 만남’에 대한 로망
여기서 남자가 여자로 치환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여자는 아니므로 일단 그렇게 말하자면, 사실 누구에게나 사랑이 아름답게 끝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첫사랑이라 하더라도.

게다가 아름답게 기억되는 첫사랑이라 하더라도 십여년이 지나서 다시 만났을 때 실망하지 않으리라는 점을 장담하기는 정말 어렵다. 어른이 되면 세월에 닳은 만큼 서로 비슷해지고, 또 세월이 흐른 만큼 과거에 대한 환상이 쌓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건축학개론은 그 첫사랑을 현재에 다시 불러와서 아주 아름다운 모습들을 보여준다. 승민(엄태웅)에 비해 전혀 늙어보이지 않는 서연(한가인)의 외모를 통해, 살짝 던지는 옛기억에 대한 환기를 통해, 남자들이 갖고 있는 ‘다시 첫사랑을 만나서 또 다시 아름다운 만남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실현시켜 준다.

물론 영화의 결론이야 알 수 없는 것이지만 현재의 승민은 서연을 만나는 동안 점차로 옛날의 승민이 되어 돌이킬 수 없는 첫사랑의 완성을 갈구하는 듯 보였다. 더군다나 서연도 그런 점이 점차 점차 눈에 띈다.
이렇게 아무리 첫사랑이라지만 서로가 동시에 서로를 탐색하며 옛 감정을 조금씩 되살리다니.. 이건 정말 오로지 실제 상대가 없는 혼자만의 꿈이자 동화다.

그래서 좋았다. 영화에서나마 이런 동화를 경험할 수 있게 해줘서. 현실의 사랑은 거칠지만, 동화 속에서의 사랑은 항상 해피엔딩이잖아. ^^


G+씨네리뷰 http://goo.gl/m99Zg
G+포스트 http://goo.gl/9hYdHZ

Comments

Popular posts from this blog

놀라운 발견 – 드로스테 저편의 우리들 | Beyond the Infinite Two Minutes (2020)

미친 격투의 끝없는 연속 – 퓨리어스 | The Furious (2025)

난해하지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 퍼플 스왈로우 | Purple Swallow (2025)

왜 제목이 [가능한 사랑]일까? | Possible Love (2026)

핵소 고지 | Hacksaw Ridge (2016)